요즘 김대리, 야근하면 '초과 근무' 인증샷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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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9.20. 오전 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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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이 낳은 직장인 新풍속도]
수당 못 받거나 불이익 대비해 위치 자동저장 '야근 앱' 깔고 사무실서 셀카 찍어 증거로 남겨
초과수당 계산해주는 앱도 인기

'52시간 적용' 3개월 남았는데 중소기업 40% "준비 안 됐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근무하는 정모씨는 지난 18일 밤 10시쯤 슬그머니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셀카를 찍었다. 상사의 지시로 3시간 정도 야근을 한 날이다. 정씨는 야근을 할 때마다 '돈내나'라는 앱을 켜고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은 앱에 저장돼 차곡차곡 쌓인다. 사진을 찍은 뒤에는 '18일 A과장 지시로 야근'이라고 기록한다. 퇴근 시간 넘겨서 일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정씨는 "연장근로 수당을 못 받거나 회사에서 혹시 모를 불이익을 받을 때를 대비해서 주 52시간 위반했다는 기록을 남겨두려는 것"이라고 했다. "회사에는 인사노무팀 같은 전문 인력이 있는데 괜히 어설프게 주장했다가 힘만 빼고 돈을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 4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주 52시간제가 본격 시행된 뒤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직장인들 사이에 '야근 기록 앱' 소문

정씨가 사용하는 앱은 GPS(위성항법장치)를 이용해 위치 정보를 자동 저장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사무실에 있었다고 증명할 수 있다. 여기다 사무실에서 직접 찍은 셀카가 있으니 간이 야근 증명서 노릇도 한다. 이 앱이 회사를 상대로 야근 수당 받아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서비스 오픈 1년이 안 돼 다운로드 수 1만건을 넘었다.


유사한 앱이 대여섯 개에 달한다. '나의 야근을 지켜줘'라는 이름을 단 앱은 출퇴근 시 버튼을 한 번만 누르면 퇴근 시간과 위치, 사진 등이 이메일과 소셜미디어 등으로 전송한다. '초키미(초과수당+지킴이)'라는 앱은 이용자 출퇴근 기록을 바탕으로 초과 누적 수당이 얼마인지 알려준다. 일부 회사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 'PC오프제'를 도입해 야근을 해도 기록을 남기기가 어려운데, 이런 앱들을 사용하면 야근 증명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임금 체불 건으로 진정이 들어오면 근로시간에 대해 사측과 근로자 측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객관적인 증거 자료를 제시하려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52시간 적용 중소기업 좌불안석

대기업들은 그나마 상황이 낫지만, 내년부터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게 되는 중소기업(50인 이상 300인 미만)들은 걱정이 크다. 2만7000여개 기업의 근로자 283만명이 해당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주 52시간 도입에 대해 1300곳을 표본 조사했는데 39%는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거나 "준비 못 하고 있다"고 했다. 준비 못 하는 이유로 '인건비 부담(53.3%)'이 가장 크다고 했다. 주문 예측의 어려움(13.7%), 구직자 없음(10.1%), 노조와 협의 어려움(6.0%)이 뒤를 이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납품 기일 등을 맞추려면 솔직히 주 52시간 지키기 어려워 범법자가 될 판"이라고 했다. 이런 형편인데 야근 기록 앱 등으로 직원들이 근무 시간을 또박또박 기록하면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직원이 100명 정도인 한 업체 관계자는 "직원 늘릴 형편이 못 돼서 주 52시간제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정부는 3개월 이내로 묶여 있는 현행 탄력근로제를 6개월로 연장하려고 하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주희연 기자 jo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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